진실의 흑역사

거짓말의 역사

 <진실의 흑역사>는 얼마 전 읽었던 <인간의 흑역사>라는 책과 동일한 저자인 톰 필립스의 또다른 책이다. <인간의 흑역사>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기에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인간의 흑역사>와 마찬가지로 거침없는 어투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영국의 팩트체킹 기관인 ‘풀팩트’에서 근무 중이라고 한다. 이 사실 때문인지,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 책에 대한 신뢰도가 확 높아지게 되는 것 같다. 진실을 확인하는 직업을 가진 그가 소개하는 진실의 흑역사들은, 인간의 흑역사와 마찬가지로 허무맹랑하면서도 어이없고, 하찮지만서도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들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유명인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는 바로 ‘벤자민 프랭클린’이다. 짤막하게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이 책에서 꽤나 빈번하게 등장하는 자다. 경쟁자의 부고를 날조한 것부터 시작해 크고 작은 거짓말들을 자연스럽고 또 정교하게 저질렀다는 사실이 내게 상당히 큰 충격을 준다. 또, ‘집단 망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는데, 이 이야기는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집단 망상’은 존재하지 않는 현상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집단적으로 믿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는 ‘마녀 사냥’을 들 수 있겠다. 사실 지금까지도 ‘마녀 사냥’은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집단 망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를 쉽게 믿고 누군가에 대해 너무 쉽게 판단한 적은 없었는지부터, 한 명의 이야기만 듣고 편협한 사고를 하지는 않았는지 등에 대해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은 거짓말의 분류이다. 책에 의하면, 하얀 거짓말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회에서 싸우지 않고 서로 잘 지내기 위해 하는 무해한 거짓말이다. 그리고 노란 거짓말은 부끄럽거나 창피하거나 겁이 나서, 자신의 결점을 감추기 위해 하는 거짓말이다. 파란 거짓말은 겸손한 마음에서 잘한 것도 못했다고 하는 거짓말이다. 마지막으로 빨간 거짓말은 기만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거짓말이다. 이는 청자와 화자 모두가 화자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누군가를 속이려는 의도가 아닌, 대놓고 하기 어려운 말을 돌려 말하는 경우를 말한다. 하얀 거짓말 외에는 색으로 표현하는 거짓말들이 있는지도 몰랐다. 거짓말을 색으로 표현한 것이 재밌게 느껴지면서도 우리가 참 다양한 종류의 거짓말을 하며 사는구나 싶기도 했다.

인간의 흑역사

과거의 바보짓, 그리고 현재의 바보짓

 정말 말 그대로 인간의 흑역사를 풀어낸 책이다.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하는데, 모두 하나같이 바보같은 실수로 인해 생겨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제목에 걸맞은 에피소드들로만 가득가득해서 읽는 데 따분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보통 ‘역사’라는 말이 들어간 책들은 대부분 내 취향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앞에 ‘흑’자가 붙은만큼 남들의 바보짓을 보고있자니 그렇게 황당하면서도 재밌을 수가 없다. 책의 내용도 재밌지만 그 내용을 풀어내는 저자의 말솜씨가 책의 지루함을 없애는 데 한 몫 했다. 저자의 말투는 뭐랄까 굉장히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것 같은 말들이 하나같이 센스있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오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저자 특유의 재미난 말투로 풀어낸 수많은 재미난 이야기들 중에서도 ‘천하장사 시구르드’ 이야기가 가장 재밌게 느껴졌다. 시구르드는 적장 ‘뻐드렁니 마엘브릭테’의 목을 베어 말안장에 매달고 귀환하였다. 그러나 귀환 도중 말안장에 매달았던 마엘 브릭테의 뻐드렁니가 계속 시구르드의 다리를 긁어 상처가 나 감염되어 며칠 만에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아마 이 사람처럼 허무하고도 황당하게 죽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헛웃음이 나오는 포인트는 황당한 죽음만이 아니다. 시구르드와 마엘 브릭테의 싸움 배경도 헛웃음을 유발한다. 이들이 싸움을 벌인 이유 역시 그리 거창하지 않다. 시구르드가 마엘 브릭테에게 각자 병사 40명씩 데리고 싸우자고 도전했고, 마엘 브릭테가 도전을 수락하자 시구르드는 병사 80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랬으니 시구르드가 이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니였을까 싶다. 저런 수를 썼는데도 전투에서 졌다면 정말 멍청이가 따로 없는 것이다. 만일 시구르드가 이 싸움에서 패배해 죽었더라도 이 책에 소개되었을 것 같긴 하다. ‘수법을 써서도 패배한 시구르드’라는 수식과 함께 소개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과학 연구로 죽은 과학자 Top6에 소개된 제시 윌리엄 러지어의 죽음 역시 탄식이 절로 나오는 사건이다. 미국의 군의관이였던 그는 황열병이 모기에 의해 옮겨진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몸소 모기에 물렸고, 그대로 사망해 가설을 입증했다. 정말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스스로 모기에 물려 사망했다니, 좋게 말해 살신성인과 희생이지 그냥 바보짓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이 사람이 안타깝까울 뿐이다. 특이한 그의 사고방식에 박수를 보낸다.

 아무튼 이 책은 이런 수많은 바보짓들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경고하는 책인 것처럼 느껴진다. 현재 우리는 다방면에서의 발전으로 인해 다른 방식으로 과거의 바보짓들을 더 많이, 그리고 더 빠른 속도로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방지하고 바로잡기 위해 우리가 어던 바보같은 짓들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도 과거에 인간들이 저질렀던 바보짓들을 소개하면서도 중간중간에 “나라고 크게 다른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의 행실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단지 재미만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약간의 재치를 곁들인 현재의 우리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과거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현재의 인간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수학자의 수학의 즐거움

다양한 수학자들의 다양한 업적

 이 책은 여러 명의 수학자들을 소개하면서 각 수학자들의 업적, 이론, 정리 등을 소개한 책이다. 기원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파피루스, 탈레스, 아르키메데스,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베이컨,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갈릴레오 갈릴레이, 페르마, 뉴턴, 아인슈타인, 앨런 튜링 등 유명한 수학자들 뿐만 아니라, 수학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으면 모르고 있었을 법한 수학자들도 많이 등장한다. 수학의 원리를 설명해줘 수학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책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책에 소개된 수많은 수학자들 중 로베르발과 호이겐스, 그리고 요한 베르누이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올해 초, 나는 우연히 사이클로이드 곡선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되었는데, 그 곡선이 나에게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었다. 원 위의 한 점이 일직선 위를 굴러갈 때 그리는 곡선이 사이클로이드 곡선인데, 이 곡선은 최단강하곡선이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는 그 어떠한 다른 곡선들이나 직선들 위에서 구슬을 굴릴 때보다도 사이클로이드 곡선 위에서 구슬을 굴릴 때 가장 먼저 지표면에 도착한다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사이클로이드는 ‘사이클로이드의 등시성’이라는 성질을 갖는데, 이는 곡선의 위치와 구슬의 질량, 크기에 관계없이 항상 지표면에 동시에 도착한다는 성질이다. 이런 사이클로이드 곡선과 관련된 실험을 한 수학자로 로베르발과 호이겐스, 그리고 요한 베르누이가 소개되었다.

 우선 로베르발은, 카발리에리의 원리를 원형 아치의 밑면적을 구하는데 활용했다. 즉, 사이클로이드 곡선과 수직선 사이의 면적을 구한 것이다. 그는 이 곡선과 수직선 사이의 면적이 원의 정확히 3배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리고 호이겐스는 최초로 추시계를 만든 사람으로, 추의 진동주기를 통해 ‘축이 수직이고 결절점이 바닥인 사이클로이드의 경우, 사이클로이드 위의 어떤 점을 지나 추의 위치가 가장 낮아지는 결절점까지 내려가는 시간은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다시 말해, 그는 사이클로이드의 등시성을 발견한 사람이다. 또, 요한 베르누이는 ‘수학자들에게 풀기를 청하는 새로운 문제’를 냈는데, 이 문제가 사이클로이드와 관련된 문제이다.

수직면에 점 A, B가 주어진 경우, 점 M이 중력에만 의존해 가장 짧은 시간에 점 A에서 B까지 내려가도록 AMB의 경로를 정하라.

시각적 유추를 통해 베르누이는 구하려는 곡선 위의 각 점에서 접선과 수직축으로 이뤄진 각도의 사인값은 떨어진 거리의 제곱근에 비례하리라 유추했다. 여기서 미분 방정식이 나왔다고 한다. 사실 아직 미분과 적분에 대해 배우질 않아 위의 내용이 잘 이해되지는 않아서 아쉬웠다. 아무튼 베르누이는 구하려는 곡선이 사이클로이드임을 보였는데, 이는 사이클로이드 곡선이 최단강하곡선임을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통해 평소 관심 있던 것에 대해 더 자세히, 또 정확히 알 수 있어 좋았다. 학년이 올라가 미분과 적분에 대해 배운 다음, 요한 베르누이를 소개한 부분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사이클로이드 곡선과 관련된 지식을 보다 더 잘 수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통해 다양한 수학자들의 업적을 알 수 있어 재밌었다. 잘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고 전혀 모르겠는 부분도 있었지만, 수학에 대해 더 공부하고 나서 읽으면 더 잘 이해될 것 같아 그때 다시 읽어보려 한다.

DNA 탐정

복제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득이 될까, 독이 될까?

이 책에서는 DNA와 유전자에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해준다. 유전자 변형 식물과 그로 인한 문제점, 자연선택설, 돌연변이, DNA 암호, DNA를 사용하는 것의 윤리적 딜레마 등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개해주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복제 기술”에 대해 소개하는 부분이 가장 인상깊었다. 우선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로슬린 연구소 이언 월머트 박사와 동료 과학자들이 내놓은 복제양 돌리에 대해 살펴보자면, 돌리는 275번의 실패 끝에 세계 최초로 포유류 복제에 성공한 사례이다. 양을 복제한 기술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곳곳에서 쥐, 소, 원숭이, 돼지 등을 이용해 클론(형질 전환된 동일한 세포군)을 생산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전자를 조작해 형광 고양이를 만들어 낸 사례가 있고, 1억 원 이상의 금액을 지불하면 죽은 반려견을 복제할 수도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미 인천국제공항에서 활약 중인 마약 탐지견이 복제견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기술이 인간에게까지 적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의 장기를 복제할 수 있다면, 장기 이식 대기자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망가진 심장에 건강한 심장 세포를 주입해 마치 새 심장을 얻은 것처럼 치료하는 일도 가능해질 수 있다. 또, 신경 세포의 경우 한번 손상되면 스스로 재생되지 않는데, 이런 세포를 복제할 수 있다면 척수 부상 환자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은 장점들을 고려한다면 복제 기술은 어쩌면 우리에게 축복과도 같은 일이 될지도 모른다. 또,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한다면 인류의 우주진출의 꿈이 보다 더 가까운 미래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몇몇 연구자들은 우주에서 생활하는데 더 적합하도록 인간의 유전자를 재조합한다면, 긴 우주여행뿐만 아니라 화성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과연 위와 같은 일들을 벌이는 것이 정말 장점만을 가지고 있을까? 복제 기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과학이 윤리를 너무 앞질러 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만약 복제기술이 정말 발전해 누구에게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기술이 된다면, 윤리적으로 많은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예를 들어, 실험실에서 복제된 아기를 사용한다든지, 사람의 장기이식을 위해 또다른 인간을 끊임없이 복제하는 공장이 생겨난다든지, 일반인보다 하위 계급으로서 취급해 노예처럼 대하는 세상이 온다든지, 사람들의 성욕을 해결하는데 쓰이는 수단으로 리얼돌과 같은 취급을 받는 복제인간이 생긴다면 현재의 우리가 상상도 못할 만큼 윤리의식이 저하된 모습을 보일 것이다. 또, 우리가 상상치도 못한 일에 복제기술이 악용될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복제기술을 찬성할 이유와 반대할 이유가 명확하기에 복제기술이 우리에게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알 수 없는 것 같다. 복제기술을 악용하는 사례를 완전히 규제할 수만 있다면 복제기술의 발전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만 복제기술을 악용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가 없기에, 복제기술의 발전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발전되는 기술들은 항상 단점을 지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복제 기술에 관한 사항은 많은 논의를 통해 부분적으로 허용해야 할 것이다. 사실 현재의 복제기술 수준을 고려하면 아직 그러한 세상이 오기는 조금 남은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백치 아다다

행복을 위한 요소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노력한다. 하지만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백치 아다다>의 수롱이와 아다다를 통해 그 방법을 알아 보았다. <백치 아다다>에서 수롱이는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자신의 땅을 사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것을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수롱이는 아내를 돈으로 사려다 아다다를 아내로 데리고 와서 돈이 소비되지 않았다고 좋아했다. 이렇게 물질 소유만을 행복의 조건으로 보았던 수롱이와는 달리 아다다는 가난하더라도 아끼고 사랑하며 사는 삶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아다다는 이미 돈 때문에 버림받았던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돈은 자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주관적 요소와 객관적 요소가 모두 필요하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 이때 주관적 요소는 심리적 만족감을 말하고 객관적 요소는 경제적 여유, 교육, 의료 기관 등 의식주 생활에 편리함을 주는 것들을 말한다. 수롱이와 아다다가 행복하지 못했던 이유는 이 두 요소를 모두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수롱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만족감 즉, 주관적 요소가 필요하다. 수롱이는 사랑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행복하기엔 주관적 요소가 필요했다. 반대로 아다다는 객관적 요소가 부족했기에 행복할 수가 없었다. 아다다는 단지 순수한 사랑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돈을 버렸기 때문에 객관적 요소가 충족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 모두 물질 혹은 심리적 요인만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행복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게 느껴진다. 아다다가 돈을 자신의 행복의 방해요소로 보았다가 또 다시 버림을 받은 것이 너무 바보같고 한심하면서도 안쓰럽게만 느껴졌다. 수롱이 역시 돈만을 바라보는 모습이 정말 극단적인 말로 소시오패스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저 소설일 뿐인데도 너무나도 속상하게 생각된다.

꺼삐딴 리

내가 이인국이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어렸을 때 뭣도 모르고 그냥 있길래 읽었던 책이다. 당시에는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았었지만 지금 와서 다시 읽어보니 이인국이란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물론 좋은 의미로 대단한 사람이라 칭한 것은 아니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는 말을 의인화하면 이인국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익만을 보고 여기저기 붙는 간신배같은 사람이다. 정말 똑똑한 사람인데도 사람들의 비판을 받아 마땅한 쪽으로 그 좋은 머리를 썼다는 점이 참 안타까울 뿐이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친일을 하더니, 해방 후에는 친일파로 몰려 감옥에 갇히고도 그 좋은 머리 덕에 소련 군의관 스뗀꼬프에게 인정받고, 심지어는 그의 아들의 소련 유학까지 보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일어나 미국이 득세하게 되니, 친미파가 된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간사할 수가 있는지.. 참 여러모로 대단한 인물이다. 그런데 솔직히 저렇게 똑똑한 사람들 중 이인국같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다. 내가 저렇게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면 절대 이인국처럼 살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부하지는 못하겠다. 그만큼 저 시대의 똑똑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굳이 고생을 해가면서까지 애국자로 살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단지 나라 하나 지키겠다고 자신이 더 높은 위치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말이다. 남의 시선보다 본인의 부를 더 중요시했던 사람들은 이인국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을 것 같다. 그 점이 정말 마음 아프다. 애국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기적이고도 개인주의적인 사람들. 내가 당시에 충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과연 나는 이인국같은 삶을 살았을까 이회영 형제들같은 삶을 살았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인국처럼 살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이었나 싶기도 하다. 망설임 없이 독립에 힘썼을 것이라고 말하지 못 하는 내가 너무 부끄럽게만 느껴진다. 

황혼

소설을 통해 엿본 노인 학대

한국 사회의 고령화 속도가 증가하면서 노인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고령 사회 단계이지만 이대로라면 곧 초고령 사회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또한 OECD가 밝힌 노인 자살률, 노인 빈곤율 순위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이로 인해 노인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황혼>이라는 소설에서도 잘 드러난다. <황혼>에서의 아들은 자신의 아픔을 알아주길 바라고 도움을 받길 원했던 늙은 여자의 손을 뿌리치면서 늙은 여자를 마치 끔찍한 벌레 보듯 싫어했다. 그러고는 늙은 여자에게 ‘노인네’라고 칭하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아들의 태도는 언어, 정서적 학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노인네’라고 칭하며 면박을 준 것이 언어적 학대이고, 늙은 여자의 손을 뿌리치는 행동은 정서적 학대이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도 모르는 새 요즘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산업화, 정보화, 도시화가 되어 가며 많은 사람들이 보다 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소설 속 늙은 여자와 같은 많은 노인들은 존재감을 상실한 채, 무관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아들과 같이 이기심이 늘면서 노인들에게 차갑게 대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예전에 중국에선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렀는데, 정작 요즘의 우리나라는 노인들이 좋은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우리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그리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가족은 부모, 조부모를 공경하고 사랑과 관심만 갖는다면 이러한 문제점은 금방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또, 나라에서는 복지 서비스를 늘리고 노인 일자리를 마련해주며 연금혜택을 확실히 보장해주어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조금만 노력한다면 노인들은 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명심하고 살아야 한다.

금방울전

고전 소설에서 찾은 현대의 모습

이 소설은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혼인해 행복하게 살았다는 흔한 내용의 소설이다. 원래 남주인공인 해룡은 동해용왕의 아들이었고 금령은 남해용왕의 딸이었다. 그런데 그 둘이 혼인을 하려고 하던 중 금령이 죽임을 당했다. 이후 다시 태어난 둘이 만나 온갖 고생을 하게 된다. 해룡은 세 살 때 피난 도중 부모를 잃고 못된 양어머니를 만나 여러 번 죽을 고비에 처하지만 그때마다 금방울의 도움으로 인해 살아남는다. 이때, 이 금방울의 모습을한 게 금령이다. 금령이는 과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처음에는 방울의 모습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것도 잠시, 여럿을 도와 금새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해룡은 금령의 도움으로 요괴에게 납치된 금선공주를 구하게 되었고 그녀와 혼인해 부마가 된다. 이후 금령은 방울의 모습에서 어여쁜 처녀로 변신한다. 해룡은 어사가 되어 지방을 순시하던 중 어렸을 적 헤어졌던 부모를 만나고 금령이 여인으로 변하였음을 알게 된다. 해룡의 보고를 받은 황제는 금령을 양녀로 삼아 해룡과 혼인하게 해 주었다. 이후 해룡과 금령, 금선공주는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솔직히 정말 클리셰 투성이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남녀가 혼인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알콩달콩 살았다는 내용의 이야기는 뻔하디 뻔하고 그만큼 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솔직히 그렇게 흥미로운 소설은 아니었다. 그냥 누워있는데 옆에 있는 책꽂이에 꽃혀 있길래 궁금해서 읽어봤는데, 내 취향은 아니었다. 차라리 그 옆에 꽂혀있던 토끼전을 읽을 걸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개인적으로 재미도 감동도 없는 소설이라고 느껴졌다. 그런데 나에게 재미없게 다가온 고난과 역경을 딛는 것, 혼인, 부귀 획득 등의 흔한 요소들이 흔한만큼 이 소설이 나왔을 당시 사람들이 행복을 위해 바랐던 요소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묘한 느낌이 든다. 사실 현대의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것, 부귀를 얻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사는 것. 모두 현대인들이 많이들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밀

루소의 교육론을 토대로 한 교육

저자의 교육론이 잘 드러나 있는 책이다. 5단계로 나누고 에밀이라는 등장인물의 성장을 바탕으로 저자의 교육론을 드러낸다. 1부에서는 기존의 교육을 비판하고 에밀의 유아기 때를 그리며 이 시기에 이루어져야 하는 교육을 제시한다. 2부에서는 아동기를, 3부에서는 소년기를, 4부에서는 청년기를, 그리고 마지막 5부에서는 에밀의 결혼까지의 과정을 나타냈다. 유아기 때에는 발육과 자연질서에 따른 양육 방법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며 아동기 때에는 직접적인 간섭 없이 간접적으로 소극적인 교육이 이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아이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년기에는 지적, 기술적 교육을 하도록 말했다. 특히 자연의 관찰에 입각해 교육을 하도록 강조했다. 청년기에는 교육의 정점 단계로, 종교와 도덕을 중요시했다. 나는 이러한 저자의 의견에 어느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이 너무 이상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저자의 의견처럼만 된다면 당연히 좋을 것이다. 아동기 때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어느 것이 바른 행동인지를 인지할 수 있도록 직접적으로가 아닌 간섭적으로 교육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혼내지 않고 스스로 알아차리기를 바랐다가 아이가 혼나지 않아서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때는 어떡해야 하나? 저자가 제시한 교육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음에 드는 부분들이 정말 많다. 주입식 교육을 비판하고, 어린이를 어린이로서 대하라는 저자의 주장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다만 저자가 제시한 교육론을 토대로 교육을 했을 때 무언가 잘못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을 뿐이다. 물론 모든 교육방식이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교육 방식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더 걱정이 드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한 것처럼 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라기 때문에, 이러한 교육을 했을 때 어떠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지, 또 그런 부작용이 나타났을 때에는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 등을 충분히 고민하고 그를 토대로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덕질로 인생역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이 책은 자신이 좋아하던 일을 직업으로 삼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오너 셰프, 연예부 기자, 포토그래퍼, 스타트업 창업자 등 여러 분야에서 좋아하던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흔히 말해 ‘덕업일치’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단순히 그들이 어쩌다가 그들이 좋아하던 일을 직업으로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해서 얻게 된 그들의 만족감이나 그런 일들을 직업으로 삼기까지의 팁,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만들 때의 팁 또한 담겨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역시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작이 이르든 늦든 일단은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무작정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너무 많이 좋아하고 그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은 그런 일이 있다면, 충분히 고민하고 또 고민해봐도 정말 그 일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관심이 가는 일이 있다면, 그때 그 일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이고 내가 어렸을 때부터 어떤 것을 꾸준히 좋아해왔는지, 요즘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관심 있는 것은 또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준 책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 소개된 12명의 사람들이 어떠한 무언가에 미쳐있다는 사실이 정말 부러웠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는 것도, 좋아하는 것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어떤 하나에 제대로 꽂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러운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께서는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 생계와 직결되는 순간 하기 싫어지고 싫증이 나고 정이 떨어진다고 말씀하셨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당시에는 그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 또 그 말이 맞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만큼 자신의 직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것이고 가장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돈만을 좇지 않고, 그냥 정말 자신이 미쳐있는 일에 종사하는 것은 일의 능률을 높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명예와 부는 자연스럽게 따라 올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정말 자신의 직업에 열정이 있고, 좋아하는 만큼 자신의 직업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깊고 전문성까지 갖추려 노력했다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 역시 자연스러울 지도 모른다. 혹여나 명예와 부,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본인만 행복하다면, 난 그게 가장 최고의 가치를 가졌다고 생각한다.